자해를 통해 힘들다고 말하는 청소년들
자해는 힘든 상황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진통제 역할을 한다지만,
나를 아프고 다치게 하는 것은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태엽 교수가 들려주는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해로 병원을 환자들이 최근 수년간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으며,
청소년 10명 중 2명은 자해 경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자해는 도대체 왜 하는 것인지 이해하고,
나와 내 가족, 친구가 자해를 할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태엽입니다. 현재 서울아산병원에서 소아청소년의 정신건강에 관해 전문적으로 진료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나를 해치는 방법, 자해
자해는 스스로 자신에게 상처를 내거나 자신을 해롭게 하는 행동을 이야기합니다.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을 해치는 것인데요, 흔히 커터칼을 이용하기도 하고 다른 여러가지 도구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조금 더 넓은 범위로 생각하자면 자해 목적으로 약을 과량 복용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자해는 보통 10대 때, 특히 12~14세 무렵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료실에 찾아오는 많은 친구들, 많은 청소년들이 자해를 했거나,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 중에는 자해 자체 때문에 오게 되는 경우도 있고, 다른 문제 때문에 왔지만 이야기하다 보면 자해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는 자해하는 사실을 모두에게 꼭꼭 숨겨서 나중에 되어서야 그런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자해를 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자해가 최근 들어 생겨난 현상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뚜렷한 증가 추세를 보이는 것은 맞는데요,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에 따르면 2017년에서 2018년 한 해 사이에만 자해 관련 상담 건수가 전국적으로 3배 넘게 증가하였고, 국내 응급실 방문 통계를 저희가 분석해 보았을 때도 자해는 꾸준히 늘고 있으며 특히 최근 3~4년 간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자해가 증가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더 알아볼 필요가 있겠는데요, 전보다 자해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어서 일 수도 있고, SNS와 대중매체 등 미디어의 영향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자해와 관련된 노래가 방송을 타서 이목이 집중되었던 적도 있었고, 자해한 사진이 SNS 상에 포스팅 되는 일들도 심심찮게 보게 됩니다.
나를 파괴하는 이유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해가 그 사람에게 갖는 의미가 다 다릅니다. 그래서 ‘자해’라는 한가지 단어로 통일해서 지칭하고는 있지만, 그 의미를 잘 파악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보통 자해를 한 사람에게 “너 왜 그렇게 한 거야?” 하고 물어보면 “모르겠다” 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말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대답할 수도 있지만, 정말로 잘 모르겠어서 그렇게 대답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신이 한 행동인데 왜 모르지? 하고 의아해하실 수 있겠지만, 그럴 수 있는 것이 자해를 할 때는 뭐가 뭔지 모르겠고 혼란스럽고 모든 게 엉망이어서 왜 했는지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자해가 진통제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자해를 함으로 인해서 극심했던 정서적 고통이 육체적인 고통으로 바뀌고, 뭔가 편해지는 느낌이 든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통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두통 있어서 진통제 복용하신 적 있나요? 그러면 진통제 먹고 두통이 사라지고 나서, 두통이 왜 생긴 거지? 하고 고민하고 생각해보신적 있나요? 네 저도 그렇고 보통 그럴 것 같은데 자해를 하는 사람들도, 그 순간의 고통이 없어지면 왜 자해를 하게 됐는지, 왜 힘들었는지 잘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해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중요해요
또 다른 이유들 중에는 자기 자신을 학대하기 위해서도 있습니다. 스스로가 너무 싫어질 때, 스스로가 미워질 때 자기 자신을 벌주는 의미를 가지기도 합니다.
또한 타인에 대해 화가 나는 마음을 자해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살아 있음을 느끼려고 자해를 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흑백처럼 보이고 텅 비게 느껴질 때, 그럴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자해를 하고 피를 보면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자해가 회피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회피하고자 하는 상황은 자신이 싫어하는 상황일 수도 있고, 불안한 상황일 수도 있고요. 그런 것들을 피하기 위해서는 자해가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렇게 피하려고 하는 자신에 대해 죄책감을 갖기도 하고, 그럴 때 더 자해를 하기도 합니다.
직관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자살을 하지 않으려고, 자살하고 싶은 마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해를 하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내가 이렇게 힘들지만, 그렇게 힘들다는 요청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워서 자해를 통해 도와달라는 말없는 요청을 하기도 하고요.
SNS에 자해 사진을 올릴 때는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하려는 목적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 외에도 다른 증상들 때문에 자해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환청이 들리는데, 자해하라고 명령하는 환청이 계속 들려서 자해를 하게 되는 경우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해가 꼭 효과적인 방법인 것은 아닙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 같은 여러가지 이유로 자해를 하지만, 잠시 동안만 효과가 있다가 다시 고통이 찾아오기도 하고 기대했던 효과가 없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자해에 대한 오해들
일반적으로 많이 하는 오해 중에는
1. 관심을 끌기 위해서 자해를 한다는 오해
실제로 관심을 끌기 위해서 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자해 전체를 놓고 봤을 때 4% 미만에 해당한다는 보고도 있는데, 주변 사람들은 관심 받는 것을 가장 흔한 이유로 꼽기도 합니다. 물어보면 상당기간 부모 몰래 자해를 했었다는 보고가 있다. 그런데도 관심을 끌려고 한 것일까?
2. 또래의 압박이 주요 원인이라는 오해
친구나 미디어를 통해 자해를 배울 수는 있다. 그러나 또래의 압박으로 자해를 한다기 보다는, 자신도 자해를 한다면 자신을 이해해주고 같은 행동을 하는 친구들을 찾고 만드는 경우가 더 흔할 것이라 생각된다. 자신이 변해서 자해를 하지 않게 된다면 그 친구들로부터 다시 멀어질 수도 있다.
3. 자해는 실패한 자살 시도이라는 오해
자해는 죽으려는 의도를 가지지 않고 할 때도 많다. 하지만 자해를 한다고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뜻은 아니고, 자해가 위험하지 않은 행동은 아니다. 주의할 필요가 있다.
점점 더 위험해진다
충동적으로 하게 되는 경우도 많고 생각했던 것 보다 위험할 수 있다.
상처가 더 깊게 나는 경우도 있고, 자해를 하고 나면 스스로가 더 한심 하거나 스스로가 더 미워진다. 그로 인해 더 큰 자해 충동이 밀려오기도 한다. 흉터도 상처는 계속 남게 되고 자해가 지속되면 더 위험한 자기 파괴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자해를 하는 사람들은 자살 위험성이 10배 가까이 높다는 연구가 있다.
자해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들
자기 스스로는 자해 행동과 충동을 참기 쉽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자신이 그런 충동이 들었다고 해서, 자해를 했다고 해서 스스로를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 생각을 해봤을 때 대화하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많습니다. 친구와, 혹은 다른 사람, 누구라도, 만나도 좋고 전화도 좋으니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대화를 할 사람이 당장 없다면 자신의 마음을 글로 써보는 것도 좋습니다.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일기로 써봐도 좋고요.
그리고 힘든 마음을 해소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자해 대신 고무줄을 팔목에 감고 튕기기도 하고, 종이를 작게 찢는 사람들도 있고요. 자해를 하는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다른 행동을 미리 생각해두면 좋습니다.
자해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 그 상황과 장소를 벗어나 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자해 충동은 빠르게 생겼다가 빠르게 줄어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충동이 줄어들려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자해를 하게 되는지 파악하고 자신의 마음, 감정이 달라져야 합니다. 스스로가 미운 마음, 죄책감도 줄어들어야 하고요.
우울증처럼 동반된 증상이 있을 때는 그에 대한 치료도 중요합니다.
이건 스스로 하기에는 어려운 과정인 경우가 많아서 전문가와 주변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의 가족, 친구가 자해로 힘들어할 때
출처 입력
주변에 자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특히 그 사람이 가족이라면 격하게 반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럴 경우 뜯어말린 다든지 대체 왜 그렇게 했냐 하든지, 왜 소중한 몸에 상처를 냈냐 하든지, 혹은 속상한 나머지 울어버리거나 화를 내는 경우들을 보게 됩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혼란스럽겠지만, 자해한 사람을 비난하는 말, 옆에 있는 사람이 더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 부모 입장에서는 자해 행동을 멈추게 하기 위해 갑자기 전이랑 180도 변해버린 다든지, 모든 것을 들어주는 경우도 보게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일어난 변화는 지속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서로 그 상황이 낯설어지고 도리어 어색해질 수도 있습니다.
가족이 아닌 친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자해를 한다고 상대방의 요구를 전부 들어주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능한 차분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은 중요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그런 것인지 들어보려고 하고, 또 상대방의 힘든 마음이 느껴지면 이에 대해 공감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설사 공감이 되지 않더라도, 비판하지 않는 열린 마음으로 들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해 너무 다그치거나, 심문하는 것처럼 대하지 말고, 걱정이 되어서 물어본 것이라고 말해주면 좋겠고요.
주변 사람들이 해줄 수 있는 또 한가지, 어쩌면 제일 중요한 역할은 자해한 사람이 도움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자해한 사람들은 먼저 도움을 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가족이든 친구든, 누군가가 도와줘야만 비로서 병원에 오거나 다른 전문적인 도움을 구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역할을 해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고생한 사람들에게
우선 정말 고생 많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해는 힘든 상황을 이겨내려고 하는 행동이니까요.
하지만 자해는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은 아니어서 꼭 전문가를 비롯한 주변 사람의 도움을 구하고 더 좋은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