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감동수기] 사흘, 두달
당신은 위태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모두가 쉴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중환자실에서도 당신은 유난히 신경 쓸 것이 많은 환자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의 아픔을 대신 품어야 하는 간호사이기에 힘겨움보다는 더 큰 사명감이 앞섰습니다.
긴 입원 기간 동안, 단 한번도 면회를 거르지 않았던 당신의 부인. 항상 단정하고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늘 친절하고 정중하게 직원들을 대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당신의 손발을 정성껏 닦아주며, 내일은 나아질 것이라고 다정한 목소리로 당신의 귓가에 속삭이던 모습에서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병원 복도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소리 없이 삼키던 당신의 아들을 보았습니다. 지금의 절망을 조금이라도 납득해보려는 듯한 그 눈빛에 나의 마음도 함께 아려왔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그의 눈망울이 의식이 돌아왔을 때 당신의 눈망울과 꼭 닮아있었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듯 위태로웠던 당신. 우리는 메마른 입에 물을 축여주고, 처진 등을 힘껏 밀어주며, 때로는 두 손을 잡아 끌고, 함께 숨을 고르며 그렇게 결승점을 향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아갔습니다.
사흘 만에 출근한 어느 날, 당신이 힘겹게 몸을 의지하던 8번 침대는 하얗게 비어있었습니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있습니다. 당신을 향한 나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한참을 당신이 누워있던 8번 침대를 바라봤습니다. 깊은 한 숨과 함께 눈시울이 뜨거워져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뜨거워진 눈시울이 채 식기 전에 나는 안도의 한 숨을 쉬었습니다.
사흘 전, 당신이 병동으로 올라가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나는 "다행이다, 다행이야"라는 말을 연신 내뱉었습니다. 나에겐 당신의 희소식이 너무나 큰 다행이었고 기쁨이었습니다. 잘 이겨낸 당신에게 고마움 마저 느껴졌습니다.
간호사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이보다 더 의미
있고 보람 된 일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당신의 마라톤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이곳에서보다는 조금은 편안해졌기를 바랐습니다.
그렇게 두 달이란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중환자실로 소포가 하나 배달되었습니다.
배달 된 소포 안에는 웬 원두 커피가 잔뜩 들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커피 사이에는 한 통의 편지가 들어있었습니다.
깔끔한 필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던 그 편지는 다름 아닌 당신의 아들이 쓴 편지였습니다.
나는 내심 당신의 희소식에 기뻐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편지 내용에 간호사들은 고요한 탄성을 내뱉으며 곧 숙연해졌습니다.
편지에는 두 달이라는 길지 않은 병동 생활 끝에 당신이 결국 세상과의 끈을 놓았다는 믿고 싶지 않은 소식이 쓰여있었습니다.
차분하고 담담한 문체의 편지에서 당신의 아들이 감내해야 했을 슬픔이 느껴졌습니다.
그 와중에 “생의 마지막 몇 개월을 간호사들 덕분에 외롭지 않게 보낸 것 같아, 고맙다”는 당신 아들의 인사에 나는 여태 느껴보지 못한 가슴 벅찬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당신의 갈라진 엄지발가락에 무좀약을 발라주며 당신과 웃는 눈을 마주쳤던 그 순간을 기억합니다.
흡인 후 편안해진 당신의 숨소리를 기억합니다.
나의 손을 꼭 잡고 당신을 부탁하던 당신 아내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비록 이제 당신을 볼 순 없지만 당신을 통해 느끼고 배우게 된 간호사로서의 감사함은 평생 마음 한 켠에 간직하고 또 추억하겠습니다.